이은호의 노션 블로그

자산가는 레버리지 안 한다…그들에겐 원칙과 현금이 있을 뿐 [큰손 따라잡기]

급락장서 패닉셀 대신 관망하는 자산가들성장 40~50%·배당 20~30%·나머진 현금강제 매도 없는 포트폴리오로 변동성 대비현금성 자산 확보와 기계적 리밸런싱 중요“변동성 커질수록 지루한 투자원칙 고수”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고액자산가와 일반 투자자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우리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코스피 지수와 원/달러 환율 등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헤럴드 DB]

상반기에만 400% 넘는 수익을 올린 ‘인공지능(AI) 큰손’이 있었다. 오픈AI 출신 연구자 레오폴드 아셴브레너가 세운 헤지펀드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등 AI 인프라 기업에 최대 4배의 레버리지를 일으켰고, 포트폴리오에는 SK하이닉스도 들어 있었다.

상승장에서 레버리지는 수익을 폭발적으로 키웠다. 하지만 시장의 방향이 바뀌자 같은 장치가 정반대로 작동했다. 7월 AI 관련주가 흔들리면서 프라임 브로커들의 추가 담보 요구가 이어졌고, 결국 대규모 포지션을 강제로 정리해야 했다.

이를 대부분 감지하지 못했던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 전망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는데 주가는 속절없이 밀렸다.

코스피 지수는 6월 한 때 9000선을 넘본 뒤, 7월 한 달 동안 30% 가까이 급락했다가 지난달 31일에는 하루 만에 17%대 반등했다. 1990년 이후 최대 월간 낙폭과 역대 최대 하루 상승 폭이 한 달 사이에 공존한 셈이다.

불과 몇 달 사이 시장의 화두도 바뀌었다. “주식이 있어서 부럽다”가 아니라 “없어서 부럽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변동성은 숫자로 확인하면 체감이 더 뚜렷해진다. 7월 한 달 동안 코스피에서 15번, 코스닥에서 12번, 양 시장을 합쳐 27번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한 해 동안 코스피 26회, 코스닥 19회 등 총 45회가 발동됐다.

7월 한 달의 27회는 당시 연간 합계의 60%에 해당한다. 특히 코스피만 놓고 보면 올해 누적 발동 횟수는 이미 6월에 2008년의 종전 연간 최다 기록인 26회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이런 시장에서 자산가들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PB센터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들도 두려워했고 매도 문의도 쏟아졌다. 그러나 실제 매도는 많지 않았다. 차이는 공포를 느끼느냐가 아니라, 공포가 찾아왔을 때 강제로 팔지 않아도 되는 포트폴리오를 미리 만들어뒀느냐에 있었다.

최대 4배의 레버리지로 400%의 수익을 냈던 투자자와 현금 20~30%를 남겨둔 채 하락장을 맞은 자산가들, 이번 유례없는 시장은 두 전략의 차이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변동성이 커질수록 평소의 투자 원칙마저 흔들리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점, 그리고 과도한 레버리지 탓에 정작 보유하고 싶어도 보유할 수 없게 된 이들이 생긴다는 점이다. 상반된 불안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하는 요즘, 자산의 궤적을 묵묵히 그려나가는 큰손들의 움직임을 통해 지켜야 할 중심이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흔들려도 견딜 수 있으려면…=“큰손은 폭락장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이번 폭락에서 절반만 맞았다. 실제로 7월 급락 국면에서 PB센터에는 매도 문의가 빗발쳤다.

다만 실제 매도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었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진단이다. 지수가 한 달 만에 고점 대비 30%대 조정을 받는 이례적인 국면에서도, 상당수 자산가는 실행에 옮기기보다 일단 지켜보는 ‘관망 모드’를 택했다. 신규 유입이나 추가 매수 문의 역시 크게 줄었다.

이번 자산가들의 방어력은 “패닉에 빠지지 않아서”라기보다 “이미 결정한 것을 함부로 뒤집지 않아서”에 가까웠다. 큰손들은 급락 초반 원하는 가격대까지 조정이 오자 보유 현금 20~30% 중 일부로 저가 매수에 나섰다. 추가 하락이 이어졌고 고통을 받았지만, 그래도 관망할 수 있었다.

반면 최근 상승장에 뒤늦게 뛰어든 이른바 ‘늦깎이’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패닉셀에 가까운 매도가 나타났다. 부동산이나 예금까지 정리해 코스피 대형주에 올라탄 지 얼마 안 된 이들일수록 공포심에 더 취약했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결국 “큰손이라 흔들리지 않았다”보다는 “미리 원칙과 현금을 준비해 둔 사람만 버틸 수 있었다”는 쪽이 더 정확한 설명이다.

이번 급락의 배경으로 기업 실적 훼손보다는 특정 종목에 쏠린 레버리지 자금의 청산과 수급 불균형이 꼽히면서, 펀더멘털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판단한 자산가들은 쉽게 포지션을 정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흥미로운 대목은 “패닉에 팔지 않는 것”과 “무조건 버티는 것”을 구분한다는 점이다. 준비된 큰손들은 하락장에서도 목표 수익률이나 손절 기준처럼 미리 정해둔 원칙에 따라 움직일 뿐, 시세창을 들여다보며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특정 종목 하나에 신용이나 레버리지를 끌어 쓰다 반대매매로 밀려나는 일반 투자자들의 패턴과 가장 뚜렷하게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단일 종목에 베팅하는 레버리지 상품을 향한 시선도 확연히 달라졌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일부 자산가들이 관심을 보였던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이번 급락의 진원지로 지목되며 신뢰를 크게 잃었다.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구조를 직접 목격한 이후로는 좀처럼 손을 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실적은 그대로인데 수급이 꼬였다=7월 급락 초반, 시장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살 기회를 준다”였다. 반도체 기업들의 장기 실적 전망은 오히려 상향되는 와중이었고, 뚜렷한 악재도 없었다.

그런데도 낙폭은 매일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감은 있었지만 정체를 짚어내지 못한 채, 일단 낙폭을 지켜보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당시의 솔직한 진단이었다. 뒤늦게 풀린 퍼즐의 상당 부분을 설명해 준 것이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의 사례다. 오픈AI 출신 청년 연구자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라는 보고서 한 편으로 월가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동명의 헤지펀드를 세워 반도체·데이터센터·전력 등 AI 인프라 관련 종목에 최대 4배에 달하는 차입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여기에는 SK하이닉스도 포함돼 있었다. 상반기에만 400%가 넘는 수익률을 내며 운용자산을 450억 달러까지 불렸지만, 7월 들어 AI 관련주가 흔들리자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프라임 브로커들이 일제히 추가 담보를 요구했다. 반등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던 이 펀드는 보유 주식 포트폴리오 대부분을 시타델에 넘겼고, 운용자산은 100억 달러 안팎까지 쪼그라들었다.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진행되던 이 강제 청산이, 실적과 무관하게 국내 반도체주가 유독 크게 흔들렸던 이유의 상당 부분을 설명해 준다. 레버리지를 낀 대형 포지션 하나가 소리 없이 풀리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매도 물량이 계속 쏟아졌고, 이것이 국내 수급을 함께 꼬이게 만든 숨은 축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이 펀드가 포지션을 넘긴 직후부터 급락했던 종목들이 일제히 반등하며, 청산이 일단락된 시점과 시장의 저점이 거의 겹쳤다. 결과적으로는 실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강제 매도’가 낙폭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낸 셈이었고, 이 사실은 사태가 정리된 뒤에야 뒤늦게 드러났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이와 비슷한 구조가 다른 형태로 반복됐다. 상반기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반도체 대형주 몇 종목이 절반 넘게 차지할 정도로 쏠려 있던 상황에서, 5월 말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개인 자금이 몰리며 변동성이 한층 증폭됐다.

지수가 오르면 추가 매수, 내리면 추가 매도가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레버리지 상품의 특성상 하락이 하락을 부르는 악순환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신용거래 반대매매까지 겹치며 낙폭이 커졌다. 결국 이번 급락은 해외에서는 헤지펀드의 차입 레버리지가, 국내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같은 방식으로 수급을 꼬이게 만든 이중 구조였던 셈이다.

여기에 미국발 재료도 겹쳤다. 빅테크 기업의 분기 실적에서 현금흐름 악화 우려가 불거지고, 반도체 제조 핵심 장비를 둘러싼 중국의 기술 진전 소식이 전해지면서 AI·반도체 사이클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유가·금리 변수까지 얽히며, 실제 실적 훼손보다 공포 심리가 낙폭을 키운 측면이 컸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금융당국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진입 문턱을 높이는 조치를 조기 시행하면서 변동성 확대의 한 축이 완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큰손들 사이에서는 이 조치를 시장 안정의 변곡점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최근 자산가들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주목하고 있다. 오라클, 메타 등 빅테크의 CDS 프리미엄이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고, 데이터센터 한 곳을 짓기 위해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브리지론과 신용공여로 먼저 조달하는 구조가 늘어나면서, 겉으로 드러난 주가보다 수면 아래 쌓인 부채가 더 큰 리스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시장 위험에 미리 대비하려는 경계심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전 세계 사모채권 시장 규모가 이미 조 단위 달러로 불어난 가운데, 대출 조건이나 담보 구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자산가들이 경계하는 대목이다.

한 펀드의 레버리지가 풀리는 과정만으로도 시장 전체의 수급이 꼬일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직접 확인한 만큼, 눈에 보이는 주가 변동성보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쌓여가는 레버리지를 더 경계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채권시장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국내외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장기 국채 매매는 소강상태이고, 대신 단기물이나 현금성 자산을 늘려 조정 국면에서 공격적으로 대응할 실탄을 마련해 두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십수 년 만의 고점 수준까지 오른 점도 채권 선호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화 강세도 눈여겨볼 변수다. 국내 대형 반도체 기업의 해외 예탁증서 발행에 따른 환전 수요와 한미 금리차 축소가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이 단기간에 큰 폭으로 내려왔다. 환전 타이밍을 재던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환율이 낮아진 지금을 달러 자산을 늘릴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폭락 때마다 뼈저리게 되뇌는 원칙, 포트폴리오=최근 포트폴리오 설계에서 가장 주력하는 대목은 좋은 자산을 보유하되 경계감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금리 인상이 AI 투자 위축과 CDS 프리미엄 상승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만큼 미국 시장의 일시적 조정은 가능하겠으나, 전반적인 펀더멘털은 훨씬 견조하다는 평가가 눈에 띈다.

결국 돈을 버는 섹터인 기존의 반도체·AI 관련 대형주는 이번 낙폭을 활용해 성장 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는 방향으로 가되, 국내시장과 함께 미국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한다. 최근 원화 강세가 나타난 데다, 그에 맞춰 미국 시장이 훨씬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 자산은 전체 자산의 40~50% 수준으로 가져가되, 반도체·AI 관련 국내 대형주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전기를 바탕으로 미국의 구글 같은 검증된 종목을 함께 선호한다.

가치·배당 자산은 20~30% 비중으로, 은행주·배당주·화장품주 등 성장 자산 섹터와 상관관계가 낮으면서도 실적이 좋은 회사 위주로 분산한다. 나머지 20~30%는 현금성 자산으로 남겨두는데, 이는 조정이 왔을 때 들어갈 실탄을 마련해 두는 성격이 강하며 단기채나 CMA를 주로 활용한다.

개인투자자가 참고할 수 있는 3가지 원칙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폭락장에서도 폭등장에서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레버리지 지양이다. 구조를 정확히 모르고 뛰어드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둘째는 현금을 정해둔 실탄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극단의 변동성을 가진 시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할 자금이 있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현금은 기다림을 가능케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자산가들과 일반투자자가 같은 시장을 겪고도 늘 수익률이 다른 이유기도 하다.

셋째는 목표 수익률 도달 시 기계적인 리밸런싱이다. 정해둔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면 욕심을 걷어내고 일부라도 실현한 뒤,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것이 현금을 무기로 장착하게 하는 실질적인 액션플랜이다.

지난번 상승장에서는 별 의미 없어 보였던 이 원칙들이, 이런 유례없는 시장을 겪고 나면 뼈저리게 느껴진다. 지나고 보면 원칙 없는 대응이 가장 큰 리스크다. 오르면 오르는 이유만 보이고, 떨어지면 떨어지는 이유만 보인다.

본인이 정한 원칙을 지키는 것, 큰손들이 이번 롤러코스터 장세를 통과한 방식은 결국 이 평범한 원칙으로 요약된다. 변동성이 커질수록 화려한 전략보다 지루한 원칙이 자산을 지킨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홍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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